검색
  • IMGURU

언어본능(The Language Instinct)

2020년 9월 16일 업데이트됨

언어 본능 (The Language Instinct)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How the Mind Creates Language)



언어가 본능이라니? 스티븐 핑커의 두번째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혹감이 컸었다. 언어가 본능의 영역이라면 우리는 왜 거의 일생을 제 2의 외국어, 제 3의 외국어를 습득하려고 애를 쓰며 어린 시절 결정적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 많은 돈,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었는가? 배신감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책의 첫 장을 열어 그의 주장을 들여다보았다.


    스티븐 핑커는 13장에 걸쳐 언어를 배우고, 말하고, 이해하려는 "언어 본능"에 대해 역사적 사례, 언어학(통사론, 형태론, 음운론) 등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인문학 서적들이 그러하듯, 저자들은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자신만의 용어를 쓴다. 저자들의 논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 특유의 단어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스티븐 핑커가 말하는 "본능"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본능의 의미와 같이 어떤 생물체가 선천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동작이나 운동을 의미한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은 거미가 부모로부터 따로 교육을 받거나 어떤 천재 거미의 발명품이 아니다.  거미가 거미의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능이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치도록 충동질한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직립보행이 문화적 발명품이 아니듯이 언어도 문화의 발명품이 아니다. 인간이 사람언어를 쓰는 것은 박쥐가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먹이를 사냥하는 것처럼 또는 철새가 일정 시기에 나침반없이 계절이동을 하는 것처럼 인간의 고유한 특징일 뿐이다. 또한 "언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어, 영어와 같은 사람언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동물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의사소통수단 중 하나의 의미로도 이해하는 편이 좋다. 스티븐 핑커가 사람언어를 인간의 종 특징으로도 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언어도 동물들끼리의 정보교환을 위한 의사소통의 수단(언어)처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핑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종의 특징이며 본능이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주장을 인용하여  두가지를 주장했다. 첫번째는 인간은 생득적으로 유한한 단어의 목록으로부터 무한한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인 '정신문법'을 가지고 있으며, 두번째 주장은 아이들에게 '보편문법'이 존재해 정규교육을 배우기도 전에 언어 문법을 배워 구사하며, 생전 처음 듣는 문장구조도 일관된 해석을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스티븐 핑커는 언어를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종 고유의 변별자질이 아니라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의사소통 방법이며 이것은 다른 종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의사소통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언어에는 보편적인 심층구조가 있어 이것이 문법유전자에 입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일명 결정적 시기라고 불리우는 12살 이전의 아이들이 특정시기에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 없이도 자연스럽게 습득 할 수 있는 것도 문법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티븐 핑커 책의 모든 단원들이 흥미로웠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단원은 3장 정신어였다. 정신어 단원의 초두에서 스티븐 핑커가 말하듯이 나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이 가진 언어에 한하여 세상을 읽고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계의 한계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따라가다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핑거는 사고와 언어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관습적 부조리'로, "인간은 두뇌의 5%만 사용한다"와 같이 모든 상식과 대립하지만(실제로 인간의 두뇌가 전체의 5%만 쓴다면 인체구조상 너무 비효율적인 구조이다) 어디선가 희미하게나마 들어 본 기억이 있고, 또 그 속에 어떤 묵직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누구나 사실이라고 믿는 것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또한 스티븐 핑커는 갖가지 사례를 들어 사고가 언어에 종속된다는 것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스키모인들의 눈에 관한 다양한 어휘는 어떤 사람의 글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부풀려진 잘못된 사례이며, 실제로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도 그 개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례도 들었다. 언어없이 사고하는 실어증 사례나 언어를 갖고 있지 않아도 금방 언어를 발명해 내는 청각장애 아들 사례도 언어가 있어야 100% 사고가 가능한 게 아님을 말해준다. 결국 위 사례들을 통해서 스티븐 핑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언어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으로 사고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정신어"로 사고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신어란 내면의 상징재현체계로, 표상(symbol)을 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표상이란 무엇일까? 이와 유사한 단어로 심상(image)이라는 단어가 있다. 심상은 단어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음 속의 상이라는 뜻인데,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의미한다. 표상은 이와 약간 다른 의미로 심상처럼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각적인 이미지를 의미하지만 대표적인 이미지를 뜻하는 단어로, 단어의 배열이 어떤 개념들 혹은 사실들의 집합에 일대일로 조응하는 물리적 대상을 의미한다. 즉 어떤 단어를 들으면 마음 속에 떠올리는 대표적인 개념, 이미지를 의미한다. 예로 들어 산타클로스 단어를 들으면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산타할아버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것이 바로 표상이다.


   사람이 언어로 사고하지 않고 개념으로 사고를 한다니.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언가에 대한 논리적 사고를 할 때, 하물며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에 대한 고민할 때도 언어로 생각하지 않는가? 하지만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무언가에 대해 사고를 할 때 마음 속 언어를 말하면서 사고하기 보다는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와 사고를 하는 경향이 많았다. 반대로 내가 상상했던 생각, 이미지들을 언어로 번역하여 산출하는 게 잘 되지 않아 쩔쩔맸던 경험도 많았다. 내가 언어로 사고를 했다면, 두서없이 말하거나 특정 개념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지 못해 쩔쩔매는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문맥상 특정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나 형태들이 다 달라도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도, 반대로 똑같은 단어로 말해도 다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것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로 들면 "(김장하는 장면에서) 야야, 거시기에 가서 거시기 좀 갖고 와라. 색깔이 거시기하다야."라는 말을 이해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다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지 않고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컴퓨터와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번 변수로 지정한 것은 다음에 다시 불러올 때 같은 변수명을 써서 불러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법 오류가 발생한다. 반면 인간은 단어의 형태는 달라도 맥락을 통해 다 같은 개념을 지칭하는 것을 안다.  이 말은 곧 개념이 부실하면 이해를 하지 못해 학습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무언가를 설명할 때 항상 똑같은 단어를 써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컴퓨터는 컴퓨터 언어로 사고하지만, 인간은 정신어로 사고한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단원은 마지막 단원인 마음의 설계도이다. 마음 설계도는 문법 연산을 위한 보편 설계도가 존재하듯이, 인간 마음의 여러 분야를 위한 보편 설계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 단원에서는 표준사회과학모델을 비판하며 보편문법과 각 문화들이 기저 정서로 가지고 있는 보편민족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나는 해당 내용보다도 아이들이 어떻게 문법을 학습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더 흥미로웠다. 스티븐 핑커는 문법을 학습하는 힘이 "유사성"에 의거한 일반화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문장을 앵무새나 말을 반복하는 자폐아처럼 곧이곧대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문장과 유사한 문장들을 일반화하여 학습한다. 일반화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유사성'은 선천적인 심리적 특성이다. 행동심리학에서 비둘기가 붉은색 원 안에 있는 열쇠를 쪼았을 경우 보상을 받았다면, 앞으로 그 비둘기는 파란색 사각형보다 붉은색 타원형이나 분홍색 원을 더 많이 쫄 것이다. 이러한 자극 일반화는 별도의 훈련없이 생겨난다. 이제 비둘기 예제를 문법에 적용해서 이해해 보자. 우리가 문법을 학습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문법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문법의 유사성을 익혀야 한다. 그럼 문법의 유사성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그 답은 "실례(Example)"에 있다. 실례를 통해 단어의 의미를 학습하고 유사성을 파악하여 문법을 익힌다. 생각해보면 예제가 부족하거나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경우 학습이 매우 디뎠던 경험이 있다. 매우 간단하지만 학습 원리를 관통하는 통찰력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이다. 예제를 통한 학습이 잘 되었던 것은 그 학습 방법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학습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기본 매커니즘이였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 언어본능은 빈 서판보다 내용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인문학은 흔히 2500년의 대화라고 하는 것처럼, 각 영역이 낱개의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짜임새 있게 연결되어 발달되어 온 분야이기 때문에 폭 넓게 쌓아온 배경지식이 없었던 나에게는 이번 책이 큰 도전이였다. 진화심리학에서부터 시작하여 언어학, 생물학, 컴퓨터공학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아우르는 스티븐 핑커의 해박한 지식과 사고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의 지적 깊이를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였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그의 깊은 지식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조금 더 지식 내공을 쌓은 뒤에 다시 도전해서 읽는다면 그땐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와 나란히 세상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 스티븐 핑커 '언어 본능' 기록 

(2020.09.08 ~ 2020.09.15)




(위 그림은 책의 내용을 한 장으로 요약한 내용이다. 언어 본능은 언어가 본능이고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이므로 언어의 매커니즘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맨 위의 라인은 사람이 언어를 들었을 때 보편문법을 기반으로 언어를 해석한다는 내용이고, 두번째 라인은 언어로 말할 때 정신 문법을 사용하여 문법을 산출한다는 내용이다. 정신 문법은 어휘 사전, 개념사전 그리고 어휘조합규칙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회 6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기술적 특이점

특이점이란 개념은 수학, 물리학에서 존재하는 개념이다. 1. 특이점(singularity) - 수학: 분수의 분모가 제로에 근접함에 따라 무한대로 발산되는 지점 - 물리학: 광속도로 이동하는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의 경계에 존재하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2. 기술적 특이점 - 영국 옥스포드 사전에 정의된 특이점이란 “인공지능을